
질감이나, 형태나 선호하는 부분을 찾기 훨씬 이전에
가장 기본이 되는 값을 떠올린다면
단연코 달걀 껍질과 달걀의 곡률이다.
그 은은한 광은 무수한 연마과정을 거쳤을 것임에도
질감의 시작과 같은 상태로 보인다.
감정이 일어나고, 저마다의 표상으로 얼룩지기 전
우리 내면의 질감은 무수한 과정을 거쳤더라도
늘 시작과 같은 상태로서 고요하다.

완전 건조된 상태에서 한 번, 초벌 상태에서 한 번,
속만 시유하고 겉은 드러내어 재벌 한 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렇게 연마 하면 달걀보다 매끈해도 손에 미끄러지지 않는 부드러움이 좋다.

이런 질감은 만져지는 것이 목적이라, 음료를 담는 잔이 되었다.
도자기를 떠올릴 때 이상적인 곡선이 있겠지만 손으로 빚은
그 희미한 동작의 흔적을 경계했다.

유약 또한 빛을 반사하지 않고, 흡수하듯 머금는 정밀한 질감을 추구하여 제작한다.
이런 추구는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듯(反者道之動), 무수한 변형 끝에 가장 순수하고
고요한 상태로 수렴하는 스토아적 사고에 매료된 까닭이다.



소성 전 떨어 뜨려 균열이 달걀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웠다.
역시나 초벌 중 그 틈이 기이하게 벌어졌지만 나는 열선을 단단히 묶어 재벌까지 마쳤다.